<스포일러 주의>
히가시노 게이고의 <마구>를 읽었다. 작품 발표 순으로 하면 초기작에 해당되지만(88년 작), 국내에 소개된 것은 작년인 2011년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이 발표 순이 아니라 한 작품이 인기를 끌고 나서 과거의 작품들이 무작위로 발표되는지라 이렇게 초기의 작품이 근래에 번역되어 나오기도 하는 것 같다.
약소했지만 천재 투수의 입학을 계기로 좋은 성적을 올리게 된 한 고등학교의 야구부에서 포수가 시체로 발견된다. 그와중에 한 전기회사에서 장난이라기엔 너무나도 정교한 폭발물이 발견되고, 고등학교 야구부의 천재 투수 역시 시체로 발견된다. 두 사건은 아무런 연관이 없어보이지만 사건이 진행될 수록 연관성이 드러나게 된다.
야구부의 살인사건이 메인 스토리이고, 전기회사의 폭발물은 서브 스토리라고 할 수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마구>의 중심은 주인공이자 살해된 천재 투수인 '스다 다케시'이다. 야구부 살인사건의 트릭이나 전기회사에 폭발물을 설치한 범인은 사실은 전부 사이드라고 생각한다. 실제 살인을 일으키게 된 직접적인 계기나 트릭도 그다지 공감되지 않고, 전기회사의 폭발물 이야기는 없애는 편이 더 깔끔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주인공인 '스다 다케시'의 캐릭터가 갖는 매력이 있다. 출생의 비밀과 함께 자신이 집안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중압감, 그를 위해 진로를 정하고 그 외의 모든 것들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안쓰러웠다. 천재적인 재능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욱더 확실한 미래를 위해 살인적인 연습을 소화해내야 하는 모습, 자신의 존재 이유인 오른팔이 망가졌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절망감, 스카우터가 변화구를 익히느라 자세를 망가트리지 말라고 조언했음에도 불구하고 망가진 오른팔로도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 마구를 배워야만 하는 상황들. 고등학생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강인한 멘탈을 갖고 있었던 것은 그만큼 많은 상처와 각오를 지나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배운 '마구'는 말 그대로 악마의 공이었다. 망가져가는 오른팔의 마지막 존재 의미가 될 수 있었던 공.
히가시노 게이고는 항상 살인사건과 그 트릭보다는 범인의 배경에 관심을 갖는 것 같은데, 그런 점에서 '스다 다케시'라는 캐릭터는 꽤나 인상깊었다.
포수를 살해하고, 그 여파가 가족들에게 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스다 다케시가 주변을 정리하고 자살로 마무리하는 점은 기시 유스케의 <푸른 불꽃>을 연상하게 했다. 하지만 자살로 마무리하기로 결심하고 실행하는 일련의 과정들은 <푸른 불꽃>이 훨씬 더 설득력이 있다.
꽤 두껍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답게 빨리 읽힌다. 페이지당 글자 수가 적은 것도 있겠지만.
+ 여담이지만, 페이지당 글자수를 적게 만들고 줄 간격을 늘리는 것은 책장이 빨리 넘어가게 만들어서 몰입도를 높이기 위한 의도적인 편집인걸까, 아니면 그냥 책을 두껍게 만들어서 비싸게 팔려는 것일까. 확실히 책장이 빨리 넘어가면 좀 더 집중이 되는 것도 같다. 한 페이지를 오랫동안 보고 있으면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것 같기도 하다. '아, 아직도 이 페이지인가' 싶달까. 하지만 추리, 스릴러 같은 경우에는 몰입이 잘 되니까 그냥 페이지에 글자 수 많이 넣고 책 두께를 좀 줄이고 싸게 만들어도 괜찮을 것 같기도 한데.
++ 작년에 <마구>가 나왔을 때, 어디선가 승부조작에 관한 이야기라고 들었던 것 같아서 그쪽 스토리를 예상하고 있었는데 내 착각이었다. 완벽한 착각이었다.
<스포일러 주의>
순전히 조셉 고든 레빗과 브루스 윌리스만 보고 예매했다. 포스터를 봤을 때는 브루스 윌리스만 알아봤는데, 출연진을 보니 조셉 고든 레빗이 있었다. 하지만 출연진을 보고도 '조셉 고든 레빗 정도면 포스터에 등장할 법도 한데 왜 안 보이지'라고 생각했다. 알고보니 포스터에서 브루스 윌리스랑 등을 맞대고 있는 남자가 분장한 조셉 고든 레빗이었다. 두 배우가 현재와 미래의 동일인물을 연기해야 하기 때문에 닮아보이게 하려고 분장을 시킨 것 같은데, 그 덕분에 둘이 은근히 비슷해보인다. 솔직히 풍채나 얼굴형은 별로 안 닮은 것 같은데, 둘의 눈이 완전 똑같다. 그래서 동일 인물의 느낌이 슬쩍 난다.
영화는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뉘어지는데, 다른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브루스 윌리스와 조셉 고든 레빗에게 초점이 맞춰지는 전반부는 타임머신, 내가 나를 죽여야 한다는 설정과 같은 것들이 중심이 되는데, 후반부로 가면 미래에 레인 메이커가 될 아이와 그 엄마에게 초점이 맞춰진다. 그러다보니 후반부에서는 브루스 윌리스의 비중이 매우 작아져버린다. 영화가 통일성이 없어서 좀 아쉽다.
후반부는 꽤 흥미로웠다. 특히 관객들에게 레인 메이커가 될 아이의 힘을 알려주지 않았고, 엄마는 아이를 자식이라고 부르는데 자식은 엄마를 사실 엄마가 아니라고 말하는 관계, 그러면서 엄마는 화가 난 아이를 두려워하는 것 같은 것들. 분위기를 조금 더 어둡게 처리했다면 사탕수수밭 가운데에 외따로이 떨어져있는 집을 배경으로 하는 스릴러가 나올 것 같았다.
어떤 이유로(비를 피한다던지, 길을 잃었다던지 뭐 하여튼) 집에서 잠시 신세를 지게 된 남자. 남편 없이 엄마와 아들 둘이만 사는 집. 사탕수수밭 한 가운데 있는 낡은 집에서 엄마는 날마다 커다란 나무 그루터기를 향해 도끼를 휘두른다. 엄마는 이상하게 화를 내는 아이를 두려워하고, 아이를 피하기 위해 장롱 속에 사람이 들어갈 정도로 커다란 금고를 숨겨두었다. 그와중에 아이는 사실 친엄마는 죽었고 저 여자는 엄마가 아니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하고, 계단 밑에 숨겨져있는 비밀 탈출로를 보여준다. 두 모녀 사이의 숨겨진 비밀은 무엇일까...
뭐 이런거. 진짜 재미있을 것 같았는데. 여하튼 앞 뒤가 다른 느낌이라 통일성이 없는 것 같다.
안 좋은 이야기만 한 것 같은데, 그래도 영화는 나쁘지 않았다. 설정에 관한 설명도 어색하지 않게 삽입해두었고, 앞부분에서 결말이 이상해보이지 않게 모든 설정들을 다 언급해두었다(사실 그 설정들 때문에 이야기가 짐작이 되긴 한다). 특히 과거의 내가 변하면 미래의 나도 함께 변한다는 설정을 보여주는 장면은 조금 소름도 끼쳤다. 미래의 내가 도망치는데, 갑자기 손가락이 하나씩 사라지고 코가 함몰된다. 손목에는 문신으로 '어디어디로 오라'고 써져있고, 나중에는 손이 사라지고 다리가 사라지고. 겨우 그 장소인 창고에 도착했더니 과거의 나는 이미 수술대에 누워서 피범벅. 피범벅인 모습을 문틈새로만 잠깐 보여주는데 그 내용들이 소름끼쳤다. 타임머신이 존재하는 세상에선 이런 식으로 사람을 고문하고 협박하는구나.
두 주연 배우의 연기는 (당연하지만)좋고. 무법도시처럼 변해버린 도시의 광경도 괜찮았고. 미래가 배경인데도 완전 미래 느낌이 나는 것이 아니라, 예를 들면 허름한 문인데 터치스크린으로 인터폰이 되어있다던지 해서 미래의 느낌을 내기 위해 제작비가 많이 들었을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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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5일에 예스24에서 주문한 원서들의 배송이 늦어지고 있다. 인셉션 대본집은 3일이내 출고 예정이고 나머지는 7일 이내 출고 예정이라더니 준비는 인셉션 대본집만 준비되어 있고 나머지는 아직도 물건을 준비 못 했다고 되어있다. 설상가상으로 500일의 썸머 대본집은 미국 총판에 물량이 없다고 미국이나 유럽쪽 출판사로 문의해봐야 해서 더 걸릴 수도 있다는 메일을 얼마 전에 받았다. 내 책은 언제쯤 받을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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