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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2.27 명탐정의 규칙(히가시노 게이고)
<스포일러 주의>
히가시노 게이고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굉장히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은 소설. '명탐정 덴카이치 시리즈'라는 가상의 추리소설 시리즈가 있다. 그 시리즈의 각 권에서의 에피소드를 단편화하여 실어놓은 책이 바로 <명탐정의 규칙>이다. 이 단편들에서는 '명탐정 덴카이치 시리즈' 각 권에서 쓰인 이야기와 트릭들의 부조리함을 털어놓는데, 특이한게 시리즈의 주인공인 덴카이치 탐정과 오가와라 경감은 이 이야기가 소설임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고 소설 내에서 움직이다가도 소설 밖의 세계로 나와 트릭의 어이없음과 작가의 필력없음을 한탄하곤 한다(두 주인공 외의 등장인물들도 이 이야기가 소설이라는 것을 종종 인식한다). 때문에 단편들의 핵심은 이야기와 트릭에 있는 것이 아니라 두 주인공의 장르 비틀기이다.
여기서 히가시노 게이고는 독자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추리소설, 즉 본격 추리소설이라는 장르에서 종종 고민 없이 차용되어 쓰이는 관습적인 트릭이나 설정들에 대해 풍자적인 비판을 한다. 첫 단편인 '밀실 선언-트릭의 제왕'에서는 본인의 데뷔작인 <방과 후>에서도 밀실 트릭이 쓰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끝나버린 지루한 트릭이라고 강도높게 비판한다. 그리고 그밖에 다잉메세지나 알리바이 트릭, 살해 방법이나 살해 도구에 관한 트릭들을 각 단편에서 하나하나 짚으며 비판하는데. 작가 본인은 작품의 경향이 처음에는 트릭의 성립에 무게를 두다가 점점 범행의 배경과 범인의 동기에 무게를 두는 쪽으로 변화해간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내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을 많이 읽어본 것도, 시간순으로 읽어본 것도 아니라 작가의 작품들을 대입해가며 읽기는 힘든데, 내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 중 가장 먼저 접했던 <용의자 X의 헌신>은 읽은지 오래 되어서 범행 트릭에 대해서는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범행의 동기가 사랑과 헌신이었던 것은 인상깊게 남아있다. 같은 갈릴레오 시리즈인 <성녀의 구제>역시 그렇고. 하지만 갈릴레오 시리즈의 첫 작품인 <탐정 갈릴레오>는 다른 것보다도 트릭에 집중한 단편 다섯 편을 모아두었다. 이렇게 보면 갈릴레오 시리즈도 비슷한 흐름 속에 있는 걸까.
<명탐정의 규칙>의 해설에 보면 가가형사 시리즈 가운데 한 권인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의 경우 (나처럼)직접 추리하며 읽지 않는 독자들의 경우에는 답을 알 수가 없도록 모든 단서는 소설에 있지만 마지막에 범인을 밝히지 않는다는데, 진정한 독자와의 추리대결이라는 느낌이 들어 궁금해진다.
방금 썼듯이, 나는 직접 추리하고 메모해가면서 읽는 스타일이 아니라 그냥 쭈욱 읽어내려가면서 탐정이나 형사의 추리를 보고 나중에 아하, 그랬구나 하고 이해하는 식이다. 하지만 직접 추리해가면서 읽는 독자들의 경우엔 이 책을 더 재미있게 ,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거기에 히가시노 게이고의 팬이라면 일본에서의 출판년도에 따라 <명탐정의 규칙>전후의 작품들을 비교해가며 대입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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