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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8.09 온다 리쿠 모음
2012. 8. 9. 23:52
<스포일러 주의>






처음 접해본 온다 리쿠의 책은 <삼월은 붉은 구렁을>. 이후로 '삼월 시리즈'를 다 읽고, <도서관의 바다>, <밤의 피크닉>, <초콜릿 코스모스>도 읽었다. 이후 한동안 온다 리쿠의 책을 안 읽다가(라기 보다는 책 자체를 별로 안 읽다가) 최근 알라딘의 오프라인 중고서점에서 책 집어오는데 맛들리면서 온다리쿠의 책도 중고로 하나 둘씩 사모으기 시작했다. 온다 리쿠는 인기 작가라서 역시 중고 매물도 많이 나와서, 안 읽어본 책 중 A급 위주로 알라딘 오프라인 중고서점에 갈 때마다 한두 권씩 집어오기 시작했다.


온다 리쿠의 작품들은 작품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무언가 말로 설명하기 힘든 기묘한 느낌들이 있다. 노스텔지어, 라고도 말하는 것 같은데 노스텔지어라는 말의 느낌을 잘 모르기 때문에 동의할 수가 없다. 내게는 그냥 말로 설명하기 힘든 기묘한 느낌이다. 그리고 이 느낌들이 온다 리쿠의 책을 자꾸 찾게 만드는 매력인 것 같다.


아래의 감상들은 한 권씩 읽을 때마다 두서없이 워드로 작성해놓은 감상들이다. 대충 정리는 하고 블로그에 올리는 것이지만,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라도 어쨌든 읽고 나서의 감상이 팔딱일 때 적어놓은 감상이기 때문에 가급적 수정하지 않았다. 순서는 읽은 순서대로이다. 예전에 읽었던 책들도 이참에 다시 읽어볼까 했지만 아직 읽지 못한 책이 너무 많아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했다.


1. 여섯 번째 사요코 친구에게 빌려 읽었다가 너무 재미있어서 중고로 다시 구매한 책이다. 데뷔작인데, 연극 같은 느낌이 물씬 풍긴다. 몇몇 부분은 연극 지문 같은 느낌이 나고, 배경도 한정되어서 그런지. 온다 리쿠가 연극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다른 작가의 책들 가운데 읽으면서 영상이 떠오르는 경우가 많다면, 온다 리쿠의 책은 연극 무대가 떠오르는 듯할 때가 많다.


학교라는 곳은 기묘한 곳이지만 온다 리쿠의 소설을 읽으면 그런 생각이 한층 더 강해진다. 그리고 그런 기묘한 느낌을 온다 리쿠는 그녀만의 느낌으로 잘 풀어낸다. 학교라는 기묘하고 특별한 공간.

첫 데뷔작인 이 책을 읽으면서 다른 작품들에서도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요소들을 발견하는 것도 즐거웠다.


2. 굽이치는 강가에서 과거에 있었던 한 사건을 네 명의 화자를 통해 진행시키는데, 이 방식은 나중에 다른 작품에서도 종종 쓰인다. 한 사건을 여러 사람의 입을 통해 서술하면서, 각 화자가 알고 있던 비밀들이 드러나고 다른 화자의 이야기와 상충하는 부분들을 통해 만들어지는 긴장감이 좋다.


역시나 온다 리쿠의 소설에서 빠지지 않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소녀가 등장한다. 온다 리쿠의 작품 중에는 아름다운 소녀가 등장하는 경우가 많은데 대체로 작품에서 미스테리한 분위기를 만든다. <여섯 번째 사요코>에서의 사요코도 그렇고. 다만 <여섯 번째 사요코>에서 '사요코'는 주인공인데, 그밖의 다른 소설에서 아름다운 소녀는 보통 주인공이 아니라 비밀을 숨긴 조연 같은 역할이다. 다만 <여섯 번째 사요코>에서 '사요코'는 주인공급으로 다뤄짐으로 인해서 그 미스터리한 느낌이 조금 희석된 듯 하다.


<굽이치는 강가에서> 역시 아름다운 소녀가 등장하는데, 온다리쿠의 다른 작품에서와 마찬가지로 그 소녀를 동경하는 소녀 역시 등장한다. 온다 리쿠의 소설에서는 이런 관계가 종종 보이는데, 한 소녀를 동경하는 소녀, 그리고 다른 사람의 동경을 받는 소녀의 느낌은 실제로 어떠할지 궁금하다. 여중 여고에서는 이런 관계가 많다는 것 같은데. 온다 리쿠의 소설에서는 동경과 시기, 질투가 뒤섞여서 꼭 파스텔 색처럼 밝고 따뜻한 색과 흙탕물같은 탁한 색이 뒤섞인 듯한 느낌인데 실제로는 어떨까. 그런 점에서, 세 번째로 등장한 화자 '마오코'의 경우 처음에는 '요시노'와 '가스미'를 싫어한다고 생각했는데, '마오코'가 화자로 등장하니 '마오코'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그게 이해가 잘 안 된다


전체적으로 굽이치는 강가에서의 경우 느낌은 늦여름, 혹은 여름과 가을의 중간쯤 같은 느낌이다. 여름의 상큼함과 활발함, 그리고 가을의 쓸쓸함이 대비되는 느낌. 시간적인 배경도 그렇지만 주인공들의 변화 역시 소설에서 언급하듯이 소녀에서 여성으로, 상큼함에서 고독함, 쓸쓸함으로 넘어가는 느낌이 든다.


3. 유지니아 끝까지 읽는데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이전의 온다 리쿠 작품의 경우 보통 이틀 정도면 다 읽을 수 있었다. 유지니아의 경우 책 읽는데 조금 게을렀던 것도 있지만, 특유의 구성 때문에 빨리 넘길 수 없었던 것도 있다. 한 사건을 중심으로 이와 관계된 모든 인물들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과거 이야기를 모아놓은 구성인데, <굽이치는 강가에서>와 비슷한 느낌이지만 화자는 훨씬 많다. 또한 인터뷰를 할 때 인터뷰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어떤 질문을 한 것인지 언급하지 않기 때문에 파악하는데 시간이 조금 걸리기도 한다. 책을 읽을수록 사건과 용의자에 대한 정보가 쌓여가면서 이 챕터가 누구에 관한 것인지, 무엇에 관한 것인지 파악된다. 때문에 가끔은 뒤로 돌아가기도 하느라고 조금 오래 걸렸다


책에는 맨 처음부터 가장 유력한 용의자가 등장한다. 그리고 이야기가 진행되고 정보가 쌓여갈 수록 용의자에 대한 의심은 점점 더 높아지지만, 마지막에 나온 용의자와의 인터뷰는 의심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하다. 범인은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고, 표지에 나온 추리소설 대상 문구에도 불구하고 사건의 발생->수사->범인 체포의 순서로 흘러가는 것이 아닌 인터뷰 모음집 같은 형태라서 일반적인 추리소설의 느낌은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의 재미는 인터뷰를 읽어가면서 이 사건에 대해 접근해나가는 그 과정이다. 보통 추리소설은 처음에 사건에 대해 수사해나가는 형사를 따라가면서 사건의 핵심적인 정보를 접하게 되는데, 유지니아의 경우 주변인물들의 근거 없는 추측, 그리고 그 주변인에 대한 다른 주변인의 의견, 그리고 각각의 관계자들의 증언 속에 들어있는 미묘한 불일치 등이 더해져서 독특한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보통의 추리소설이 집 안을 들어가서 살펴보는 것이라 하면 유지니아는 담벼락에 매달려 집의 겉모습만을 살펴보는 것과 같다. 창문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려 애쓰지만, 볼 수 있는 범위도 한정되어 있고 어느 창을 통해 보느냐에 따라 집안의 모습은 달라진다. 이러한 점이 오히려 긴장감을 유발하고, 내가 직접 추리한다는 느낌을 갖게 만든다. 결국 범인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지만(책 내용상 밝혀졌을지 모르지만 내가 이해를 못 한건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그 과정을 경험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다.


4. 라이온 하트 지금까지 읽어본 온다 리쿠의 책 가운데 최초의 본격 로맨스 소설이다. 세대를 거슬러 이어지는 기억을 바탕으로 한 사랑 이야기는 설정만으로도 상당히 애틋하지만, 지금까지 읽어본 온다 리쿠 소설 중 가장 재미 없었다. 우선 로맨스 소설은 취향이 아니라는 점도 있지만, 글에서 기승전결을 잘 느끼지 못하겠고 이상하게 스케일이 커진다는 점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실 책을 읽으면서 나의 가장 큰 관심은 '에드워드'와 '엘리자베스' 사이의 로맨스의 행방이 아니라 둘 사이의 관계가 세대를 뛰어넘어서까지 전승되는 원인이 무엇인가 였다. 두 사람은 어째서 과거로부터 이어져오는 상대방의 기억을 갖고 있는지, 어째서 행복한 만남이 아니라 찰나간의 만남밖에 갖지 못하는지를 밝혀내는 것이 중심이라고 느껴졌다.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쓸데없이 스케일이 컸고, 두 사람의 만남과 헤어짐이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해서 두 사람의 관계가 가진 비밀에 대한 궁금증도 약해졌다. 결국 이야기에 대한 흥미 자체가 사라져서 재미없었다.


재미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읽은 것은 돈이 아깝기도 했지만 각 세대에서 기억을 계승한 에드워드와 엘리자베스의 입을 통해 전승되는 기억에 대한 정보를 얻는 방식을 통해 정보를 짜맞추는 행위가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이 라이온 하트 전반에 걸쳐 사용되는 것은 아니고, 다른 사건이 중심이 되면서 사이드로 에드워드와 엘리자베스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챕터도 있다.


온다 리쿠가 굉장한 다작을 하는 만큼, 작품들의 편차도 크다고 들었다. 지금까지 운 좋게 재미있는 작품만 읽어왔는데, <라이온 하트>는 최초로 읽게 된 온다 리쿠의 재미없는 작품으로 남았다.


5. 어제의 세계 우선 <유지니아>처럼 한 가지 사건을 다양한 화자의 입을 빌어 말하는 방식이 사용되었다는 점은 좋다. 온다 리쿠는 이러한 방식의 서술을 잘 사용하는 듯 하다.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본 모습을 통해 전체를 추리해내야 한다는 점에서 독자의 입장에서도 즐겁게 책을 읽게 해준다. 그리고 마을과 탑이 가진 비밀은 인상깊었다. 약간 억지스러운 것 같기도 하지만 이 분야는 내가 모르기 떄문에 넘어가고, 인상은 강하게 남았다.


하지만 마무리는 납득할 수 없다. 완전히 판타지로 끝나는데, 옮긴이의 말 에서는 이게 바로 온다 리쿠 표 판타지 라고 하지만, 추리소설 분위기에서 갑자기 판타지로 끝맺음을 해버리면 독자 입장에서는 당황스럽고 현실의 범위에서 마무리할 수 없어서 결국 판타지스러운 설정의 힘을 빌려야 했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책 중간에서 '고로'가 본인은 신이 되기 위해 이 마을에 왔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는데, 난 그것이 죽음으로써 모두의 기억에 남는다든지, 아니면 마을의 비밀에 융화된다든지 뭐 이런 것일 줄 알았다. 하지만 내 기대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빗나가는 것은 상관 없는데, 납득이 가는 결말을 제시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봉신연의를 생각나게 만드는 어이없는 결말은 이전까지의 이야기를 즐겁게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진한 아쉬움만 남게 만든다.


그리고 제목이 어째서 어제의 세계인지도 이해할 수 없고 책 뒤의 '망각할 능력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문구도 왜 있는건지 모르겠다. 온다 리쿠가 본인 작품의 집대성이라고 했는데 어떤 점에서 집대성했다는 것인지 역시 잘 모르겠다.


초중반 부분을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에 마지막의 마무리는 더더욱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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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곰고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