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9. 29. 22:17

0. 자전거 이야기를 쓸 폴더 이름이 왜 자전거 '도전과제'인지, 이제 나온다. 이전까지는 그냥 자전거 라이딩이었다면 이 날부터 우리에게는 도전과제가 부여되었다.


1. 출발 전, A는 페달 축이 흔들리던 자전거를 환불받고 스피너를 샀다. B도 집에 있던 철티비와 빌린 자전거의 한계를 몸으로 깨닫고 자전거를 새로 샀다. A는 자전거를 사면서 자전거가게 아저씨에게 새로운 길을 들었다고 했다. 굴포천 쪽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 다른 길을 통해 아라뱃길로 가는 길이었다. 나는 굴포천의 도로 상태에 불만이 많았기 때문에 새로운 길로 가는 것을 적극 찬성했다.


새로운 길을 가는 김에 나도 부천에서 자전거를 타러 갈 수 있는 다른 길이 있나 알아보기 위해 인터넷을 뒤적거리다가 4대강 국토종주 자전거길 여행 여권이라는 것을 찾았다. 4대강 자전거길과 국토종주 자전거 길 등 많은 자전거길을 통합해서 이 여권에 스탬프를 찍을 수 있는 것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4대강 이용도우미 자전거여행 홈페이지 http://www.riverguide.go.kr/cycleTour/index.do 참고) 우리는 스탬프를 다 찍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우리가 갈 수 있는 곳 정도는 찍어보자는 마음으로 도전해보기로 했다. 우리의 자전거 라이딩 도전과제의 시작이었다.


2. 자전거 여권은 아라 인천갑문에서 판다고 한다. 우리는 새로운 길을 통해 아라뱃길에 들어선 후 인천갑문으로 달렸다. B는 새 자전거를 사서 그런지 전혀 뒤쳐지지 않고 잘 달렸다. A가 우리 셋 중 가장 체력이 좋고, B는 오래달리기는 잘 하지만 자전거 타기로는 나와 비슷한 정도의 페이스인 것 같았다. 우리는 많이 쉬지 않고 인천갑문에 도착해 수첩을 샀다. 처음 A와 왔을 때 인증센터 간판을 보고 대체 뭘 인증한다는 건가 싶었는데, 바로 이 도전과제를 인증하는 것이었다. 여권과 지도를 합해 4500원에 판매하고 있었는데(여권이 4000원), 여권도 좋지만 지도가 참 유용했다. 인천갑문에서 대망의 첫 스탬프를 찍고, 지도를 펼쳐보니 한강갑문정도는 찍을 수 있겠다 싶었다.


3. 한강갑문으로 가는 길은 익숙했다. 가는 길에 사고 현장을 봐서 조금 무서웠지만, 우리는 겁이 많은 안전한 라이딩족들. 아무런 탈 없이 잘 도착했다. 아, 중간에 B의 자전거 페달이 흔들렸지만 계양역 앞 자전거 수리점에서 잘 고쳤다. 편의점에 들러 아이스크림을 먹고 초코바도 보충한 우리는 한강갑문 스탬프까지 다 찍었다. 지도를 살펴보니 아라뱃길이 21km인데 한강갑문에서 여의도까지는 16km밖에 안 된다고 나와있었다. 우리는 여의도까지만 가기로 했다.


4. 여의도까지 가는 길은 한강 자전거길이었다. 아라뱃길 자전거길과 비교했을 때, 한강 자전거길은 우선 사람이 엄청나게 많았다. 게다가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산책하는 사람들도 많고 어린이들도 많아서 많은 주의를 필요로 하는 곳이었다. 앞에는 이리저리 흔들거리며 자전거를 처음 타는 듯한 아이들도 있고 커플끼리 사이좋게 양옆으로 다니면서 길을 다 막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고 양옆으로 자전거가 지나다니는지 확인도 안 하고 우선 건너고 보려는 보행자들도 있고 뛰어다니는 아이를 제대로 살펴보지 않는 부모도 있었다. 그 와중에 뒤에서는 씽씽 달리는 자전거들이 시도때도 없이 옆을 스쳐지나갔다. 한강 자전거길은 처음이라 많이 무섭기도 했다. 다니다보니 사고 현장을 또 보았는데, 넘어진 여자분은 헬멧을 쓰지 않았는지 얼굴을 부여잡고 있었다. 지나가며 본 거라 확인은 못 했지만 아마 얼굴이 바닥에 쓸린 듯 싶었다. 헬멧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여의도까지 우리는 쉬지 않고 왔다. 16km를 쉬지 않고 왔다면 다음번엔 굴포천 끝나고 아라뱃길 들어섰을 때부터 인천갑문까지는 쉬지 않고 갈 수 있겠다 싶었다. 스탬프를 찍고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여기서 집으로 돌아갈 것이냐, 한강 서울방면의 스탬프를 전부 찍고 전철을 타고 갈 것이냐. 결론은 후자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가 그때 집으로 가자고 마음을 먹었더라도 체력이 중간에 방전되었을 것이다. 굴포천까지 생각한다면, 스탬프를 전부 찍고 전철을 타는 쪽이 여의도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것보다 더 짧은 거리였을 것 같다. 아니, 비슷했으려나...


5. 우리는 약 22km를 더 가 광나루 자전거공원을 찍은 뒤, 잠실철교를 건너 뚝섬 전망콤플렉스를 찍고 7호선을 타고 신중동역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광나루 자전거공원까지 가는 길은 지옥이었다. 체력적으로 후달렸던 것도 있지만, 우선 오르막이 많았다. 경사는 심하지 않았지만, 당시의 체력으로는 경사가 1도 더 올라가면 체력은 10배로 들었던 것 같다. 오르막의 힘듦은 길게 가고 내리막의 쾌감은 순간이었다. 우리는 광나루 자전거공원까지 가면서 사고 현장을 하나 더 발견하고 겨우 스탬프를 찍었다.


6. 뚝섬 전망콤플렉스까지는 금방이었다. 5km 내외였을 것 같다. 광나루 자전거공원을 찍으니 날은 어두어져가고 있었다. 우리는 후미등과 전조등을 켜고 달렸다. 뚝섬 전망콤플렉스 도착하기 전에 해는 다 졌다. 우리는 가로등 불빛에 의지하며 달렸다. 체력은 이미 방전상태. 그래도 뚝섬까지 다 찍자 승리자가 된 느낌이었다. 도전과제 시작 첫 날에 인천, 서울쪽은 다 찍었다는 성취감. 우리는 기분좋게 전철에 올랐다. 자전거 때문에 제대로 앉지는 못했지만.


7. 신중동역에 도착해 만두를 먹고 집으로 왔다. 엉덩이가 엄청 아팠다. 조금이지만 비가 와 날씨도 추웠다. 기록을 위해 켜놓았던 자전거 어플은 여의도 찍고 나서 기록이 안 돼서 광나루에서 꺼버렸다. 하지만 보람찼다. 100km를 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평소 아라뱃길로 달리던 50km는 훌쩍 넘었을거다. 앞으로 조금 더 체력을 길러야겠다. 그러면 다음 도전은 아마 팔당역에서 시작하겠지. 한강종주 자전거길은 올해 안에 찍어볼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날이 금방 추워질테니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열심히 자전거 타서 기른 체력을 겨울동안 처박혀있으면서 없애버리면 안될텐데.

Posted by 곰고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