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에 해당되는 글 73건
- 2012.11.25 모든 것이 F가 된다(모리 히로시)
- 2012.11.17 13번째 인격 ISOLA(기시 유스케)
- 2012.11.16 우리는 사랑일까
- 2012.11.04 불안한 동화
- 2012.11.01 (500) DAYS OF SUMMER : The Shooting Script
- 2012.10.27 박사가 사랑한 수식
- 2012.10.24 마술은 속삭인다
- 2012.10.21 the curious incident of the dog in the night-time
- 2012.10.17 성녀의 구제
- 2012.10.17 호숫가 살인사건
<스포일러 주의>
대학생들에겐 공포의 제목일 <모든 것이 F가 된다>를 읽었다. 난 휴학생이라 무섭지 않았다.
주인공 사이카와와 모에, 그리고 대학원생들이 캠핑을 떠난 외딴 섬에서 일어난 사건이 메인이다. 외딴 섬에는 연구소만 있는데, 그 지하에는 천재이지만 15년전 부모를 살해한 마가타 시키가 있다. 사이카와와 모에는 마가타 시키를 만나보기 위해 캠핑중에 연구소에 들르는데, 마가타 시키가 살해되었다.
등장인물들부터 작가 자신까지 전부 다 이과계라 그런지 약간 감정적으로 차가운 느낌인 것 같다. 트릭도 이과계 트릭이고. 그래서 그런지 개인적으로 읽으면서는 쭉 읽었지만 다 읽고 나서는 그냥 그런 느낌.
소재가 컴퓨터나 가상현실 관련의 나름 최첨단 이야기들인데, 책이 쓰여진 시점이 지금부터 15년도 더 전이라서(1996년 작품) 지금 보면 어색하고 그렇다. SF가 아니기 때문에 아예 상상력에 의존한 이야기가 아닌데, 그렇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더 빨리 구식이 되어버린다.
시리즈의 첫 번째 권이라고 하는데, 캐릭터가 히가시노 게이고나 미야베 미유키에 비해 꽤 튄다. 미야베 미유키의 경우 <모방범>의 등장인물이 <낙원>에서도 등장한다고 들었다(<크로스 파이어>에도 등장한다고 들었는데 확실하진 않고). <모방범>만 읽어봤는데 현실에 서있는 인물이라는 느낌이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갈릴레오 시리즈'에서의 갈릴레오는 조금 비현실적인 캐릭터이긴 한데, <모든 것이 F가 된다>의 모에는 그보다 더 만화같은 캐릭터이다. 천재에 부자이고, 서민의 삶에 대한 상식도 없다. 게다가 부모가 모두 사망했는데, 친척은 상당히 높은 공무원들이다. 다른 주인공인 사이카와와 러브라인을 형성하는 것 같은데, 탐정 역할을 맡고 있는(실제 직업은 건축학과 교수지만) 사이카와를 보조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캐릭터가 좀 더 강하다보니 시리즈를 이어나가는데 좋을 수도 있는데, 그렇다고 라이트노벨처럼 캐릭터가 강렬한 것도 아니고 이야기가 막 재미있는 것도 아니라 시리즈에 대한 기대감은 별로 없다.
오히려 마가타 시키의 캐릭터가 더 인상깊다. 소설 속에서는 희생자이자 범인으로 나오는데, 처음의 면담 장면과 마지막의 사이카와와의 짧은 만남 장면에서 깊은 인상을 남긴다. 마가타 시키를 주인공으로 하는 '시키 시리즈'도 있다는데, 10편이나 되는 시리즈인 '사이카와&모에 시리즈'보다 이쪽이 더 기대된다.
+알라딘에 되팔려고 했는데 매입불가 상품. 어쩌나.
++어제 분명히 썼는데 저장을 안 했나보다. 다행히 임시저장 되어있어서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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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주의>
<푸른 불꽃>과 <천사의 속삭임>을 통해 좋아하는 작가로 자리잡은 기시 유스케의 데뷔작. 히가시노 게이고나 온다 리쿠, 미야베 미유키에 비하면 호러의 색채를 좀 더 강하게 보여주는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주인공 유카리는 '엠파시'라는 능력을 통해 사람의 마음에 깊이 공감하고 읽어낼 수 있다. 한신 대지진으로 인한 피해자 상담을 하던 중 만난 치히로라는 환자가 다중인격이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리고 치히로의 학교 상담 선생님과 함께 치료를 해나가던 중 분노와 원망에 가득찬 열 세번째 인격을 찾아내게 되고, 그 인격으로 인해 끔찍한 사건들이 발생한다.
엠파시, 유체이탈, 영혼 등의 비과학적인 소재들이 많이 나오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다잉아이>만큼 거슬리지 않고 자연스럽다. 경찰이 등장하지 않기 때문인지, 아니면 분위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기시 유스케는 조금 더 비과학적이어도 괜찮은 느낌이다. 추리라기보단 호러소설이니까.
몰입도도 있고 재미있게 읽었다. 역시 유명 작가가 될 사람은 데뷔작도 재미있구나 싶다. 재미있는 부분들에 대해서는 딱히 할 말은 없는데, 마지막 마무리는 말해두고 싶다. 뒤끝 있는 마무리는 좋다. 선을 긋다가 펜을 딱 떼는 것이 아니라, 흐물흐물 흐릿하게 선을 계속 이어나가다가 슬그머니 떼어버리는 느낌. <푸른 불꽃>도, <천사의 속삭임>도 어느정도 그런 느낌의 마무리였던 것 같다.
별로였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크지 않지만 또 쓰다 보면 분량으로는 길어진다.
데뷔작이라 그런지 이야기는 매끄럽지 않은 부분들이 몇몇 있는데, 특히 유카리가 다중인격 치료를 목적으로 치히로의 상담을 하게 되는 부분이 그랬다. 처음 상담을 할 때는 다중인격임을 몰랐고, 치히로의 인격들 역시 유카리에게 다중인격임을 들키지 않기 위해 경계심을 갖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치히로의 인격들은 자신이 다중인격임을 유카리가 알고 있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행동한다. 치히로의 인격들이 유카리를 인정하고 다중인격 치료를 위한 상담을 맡기는 과정이 없다. 그 밖에도 유카리가 가진 엠파시라는 능력이 너무 자연스럽다. 다른 등장인물들은 유카리가 알지 못해야 할 정보를 알고 있는데도 '감이 예민하네'로 넘어가고, 혹은 엠파시라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말해도 그냥 놀라고 만다. 엠파시는 거의 초능력 비슷한 느낌으로 사용되는데, 그만큼 비일상적인 능력이면 아예 철저하게 숨기거나 공개되더라도 어느정도의 갈등을 동반해야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 싶었다. 마지막으로, 한신 대지진이 배경인데 그 배경이 갖는 의미를 좀 더 강조해도 좋았을 것 같다. 실제 있었던 비극적인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써먹지 않을 거면 굳이 실제 있었던 지진이 배경일 필요는 없지 않을까.
역시나. 별로였던 부분은 적은데도 글로 쓰면 꼭 길어진다. 여튼, 재미있게 읽었다.
+ 제목에 책 제목만 쓰지 말고 작가 이름도 함께 써두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아서 이번 글부터는 그렇게 쓰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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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검색하면서 알았는데, 개정판이 있다. 하드커버. 내가 읽은 책은 소프트커버에 2005년에 출간된 판. 책 정보 넣는데 제목으로 검색하니까 '사랑' 들어간 책이란 책은 모두 나오는 듯. 검색능력이 쓰레기같다. '알랭 드 보통'으로 검색해서 찾긴 했지만.
뭐 하여튼 꽤 긴 시간동안 읽은 <우리는 사랑일까>. 그냥 유명한 작가라 이름은 알고 있었는데(게다가 영화 <500일의 썸머>에서 남자 주인공이 읽는 책이 이 작가의 <행복의 건축>이다) 알라딘 중고서점에 있길래 어떤 책을 쓰나 궁금해서 집어왔다. 뒤의 설명에 보면 연애소설이라기에 '별로 안 좋아하는 장르니 빨리 읽고 팔아버려야지'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굉장히 재미있고, 연애소설을 생각하고 이 책을 읽었다간 낭패를 본다. 로맨스라기보다는 '연애'라는 행위를 다루고 있는 소설이라고 해야 할까. 굉장히 흥미롭다.
책에는 여주인공 '앨리스'와 남주인공 '에릭'이 등장한다. 앨리스의 시점에서 에릭을 만나 연애를 시작하고 관계를 지속해나가다 결국 헤어지기까지의 과정이 책의 내용이다. 하지만 로맨스 소설에서 기대할 수 있는 로맨틱하거나 가슴아픈 에피소드, 문학적인 감정 묘사같은 것은 없다. 대신 작가는 둘 사이의 관계를(특히 주인공인 앨리스의 시점에서 바라본 연애를) 분석한다. 연애소설에서 쉽게 발견할 수 없는 사상가들의 이름이 등장하고 그들의 이론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것들에 비추어 둘 사이의 연애관계를 살펴본다. '소설'이라기 보다는, 사랑과 연애관계 뒤에 숨어있는 생각의 흐름들을 설명하려고 하는데, 그냥 설명하면 재미도 없고 어려우니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두 주인공을 등장시켰을 뿐인 느낌이다. 연애를 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이야들을 한 커플에게 몰아놓은 것 같다. 'case 1. 앨리스와 에릭 커플의 경우' 같은 느낌. 두 주인공의 에피소드를 위해 할애된 분량보다 그 에피소드에서 읽어낼 수 있는 것들을 설명하기 위해 할애된 분량이 훨씬 많은 듯하다.
그렇다고 해서 '겉으로만 소설인 듯한' 이 책이 지루하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작가의 말솜씨도 재미있는데다가 잘 모르는 사상가들의 이야기를 통해 연애관계를 살펴보는 방식이 꽤나 재미있다. 전혀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두루뭉실하게 보여주는 소설보다 훨씬 더 명확하고 이해하기 쉽다고 해야 할까. 지나치게 분석적이다 보니 오히려 더 잘 이해되고 그런게 있다. 더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연애행위 뒤에 이렇게 많은 이야기가 있을 줄 몰랐다. 예전에 한 수업에서 교수님이 '사람은 둘만 있어도 그 사이에 권력관계가 형성된다'고 하셨는데 이 책을 보면서도 교수님의 말씀이 자주 생각났다. 순수해보이는 사랑 속에도 권력관계가 형성되어 있고 계산이 있고 다 그런 것. 그렇다고 이 책이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비관적인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읽으면서 지금 하고 있는 연애에 있어 참고...라고 해야할까, 새로운 관점으로 우리를 바라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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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 리쿠의 1994년 발표작. 국내에는 2007년에 출판되었다(이제 일본에서 언제 출판되었는지를 적어놔야겠다. 그래야 다른 작품들과의 전후 관계를 판단하기 편할 듯 싶다. 이미 늦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젊어서 살해당한 여류 화가의 전시회에서 영문 모를 두통으로 쓰러진 주인공은, 깨어난 뒤 화가의 아들이 자신을 그 화가의 환생이라고 말하는 것을 듣게 된다. 여류 화가는 죽기 전에 자신의 작품을 네 명의 지인에게 전달해달라는 유서를 남겨두었고, 화가의 아들과 주인공은 작품을 전달하면서 화가의 죽음에 얽힌 비밀에 접근해간다.
환생을 소재로 한 작품인데, 비현실적인 소재라는 점에서 <어제의 세계> 결말에서의 안 좋은 기억이 생각나 망설였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야기와 결말은 납득할 수 있는 현실적인 선에서 마무리 되었다. 온다 리쿠의 작품이지만, 다른 작품들에 비해서는 그 특유의 색채가 옅다는 생각이 든다. 비교적 초기 작품이라 그런걸까. 하지만 '재미'는 확실히 있다.
다른 작품들에 비해서는 약하지만, 그래도 '이건 온다 리쿠의 이야기'라는 느낌이 드는데, 그 느낌을 만드는 원인이 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전작들과의 몇 가지 공통점을 찾아보면, 역시 아름다운 여성이 등장하고 그 여성은 작품의 미스테리한 요소의 핵심이다. 살인사건이 있지만 사건 자체는 거의 다루어지지 않는다. 수사의 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경찰이나 형사가 등장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사건은 과거의 이야기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건을 뒤쫒는 과정은 과거를 뒤쫒는 과정이다. 그리고 과거의 기억이란, 수사와 같은 엄밀함은 없지만 모호함과 알 수 없는 미스테리함이 있다.
뭐 이정도일까. 온다 리쿠의 작품의 특징은 역시 '분위기' 라고 생각하는데, 지금은 개인적으로 살인 사건의 성격이 다른 추리소설과는 많이 다르다는 점이 이 '분위기'를 형성하는 요건이 아닐까 한다. 예전에는 '미스테리함을 지닌 아름다운 여성 등장인물'이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근데 또 생각해보면 <초콜릿 코스모스>같은 작품은 살인사건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냥 연극 이야기니까. 하지만 그 책 역시(라기보다는 지금까지 읽었던 온다 리쿠 작품 중에서는 거의 최상위 급으로) 몰입도가 뛰어났던 것을 보면 살인사건이나 여성 등장인물 뿐만 아니라 이야기를 참 재미있게 하는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 표지 마음에 안 듬. 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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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 Days of Summer : The Shooting Script
- 저자
- Neustadter, Scott/ Weber, Michael H./ Webb, Marc ( 지음
- 출판사
- Perseus | 2009-12-22 출간
- 카테고리
- 예술/건축
- 책소개
- The official book tie-in to the acc...
1. (혹시나 모를 원서의 난이도 같은 것이 궁금해 검색해서 들어온 사람을 위해)대본집이라 쉬울거라 생각했지만 그렇게 쉽지는 않았다.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첫 번째 문제는, 지시문에서 행동이나 감정, 상황 같은 것을 표현하는데 쓰이는 형용사들이 익숙하지 않았다(영문 소설을 많이 읽고 그쪽에 쓰이는 어휘들이 익숙한 사람이라면 아무런 문제 안 될것 같긴 하다). 시험을 위해 배우는 단어에는 이런 단어들이 없으니까. 두 번째 문제는, 대본에서 쓰이는 어휘는 막히는게 많지 않지만 의외로 문어체와는 다른 느낌들이 해석하는데 방해가 된다. 대본이다보니 뭔가 문법이 익히 공부하던 문법이랑은 다른 것 같다고 해야하나.
2. 영화를 좋아하는데, 대본집을 본 것은 처음이다. 너무너무 좋아하는 영화이고, (위에도 썼지만) 대본집이니까 아무래도 소설같은 것보다는 쉽지 않을까 싶어서 용기있게 구매했다.
책 구성은, 감독과 각본가의 서문+대본(중간에 몇 장의 컬러 사진들이 삽입되어있다. 몇 장 되지 않음)+프로덕션 노트로 구성되어 있다. 딱히 설정이랄지 파고들만한 면이 없기 때문에 부록은 좀 부족한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영어의 난이도는 맨 위에 썼으니 넘어가고, 대본을 처음 읽어본 느낌은 정말 신선했다. 사실 어차피 영화도 몇 번이나 봤으니까 뭐 새로울 것이 있겠냐 싶었는데, 의외로 새롭게 다가온다.
우선 지시문의 존재가 새롭다. 몇몇 장면들에서는 그 장면들의 어디가 포인트인지를 알려주기도 하고, 애매했던 배우들의 표정이 사실은 어떤 표정인지 같은 것도 나와있다. 연기로 보는 것과 글로 보는 것이 느낌이 많이 다르다. 또한 장면들 역시 영화로 보는 것과 지시문을 읽고 머리속으로 상상하는 것이 다르다.
대본도 느낌이 다른데, 실제로 영화에서 배우의 말을 토씨하나 빼먹지 않고 기억하진 않기 때문에 비교는 무리지만, 글로 읽는 것의 느낌이 있다.
스크립트랑 영화를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다. 특히 영화에서 재미있는 장면들이 많았는데(화면 분할이라던지, 뮤지컬 장면이라던지, 흑백영화 장면이라던지), 어디까지 스크립트에 적혀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생각보다 스크립트에서 많은 것이 정해지는 것 같다. 어떤 장면은 앵글까지 다 나와있기도 하다.
영화를 먼저 보고 대본을 읽으니 장단점이 있다. 장점이라면 역시 내용을 알고 있기 떄문에 독해에서 애매한 것도 영화를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장점은 단점이 되기도 하는데, 아무래도 영화를 많이 봐서 내용을 다 알고 있으니 해석이 되지 않아도 대충 넘어가버리게 되기도 한다. 집에 <다크나이트 트릴로지>, <인셉션>, <제인 에어>, <팅커 테일러 솔져 스파이>, <싱글맨>도 스크립트가 있는데(왜이렇게 많지) 영화를 보고 읽을지, 아니면 읽고 볼지 모르겠다. <제인 에어>와 <싱글맨>은 영화를 안 봤고, <팅커 테일러 솔져 스파이>는 봤지만 본게 아닌 상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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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로 인해 기억이 80분 밖에 지속되지 않는 박사. 책의 화자는 박사의 집에 출퇴근하며 파출부로 일하는 여성이다. 80분의 기억력을 갖고 있고, 사람을 대하는게 서투르지만 따뜻하며, 수학을 사랑하는 박사에게 점차 적응해가면서 화자와 화자의 아들 루트, 그리고 박사는 셋의 추억을 만들어간다.
감동적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기승전결이 뚜렷하거나 눈물이 막 쏟아지거나 하는 내용은 아니다. 오히려 굉장히 잔잔한 분위기 속에서 화자는 박사와의 추억을 이야기한다. 위기와 이별도 담담하게 서술되고.
박사는 순수하고, 아이들을 사랑하고, 예의바르다. 80분이면 사고 이후의 모든 것들을 다 잊고 말지만, 자신이 상대하는 사람들(파출부와 그녀의 아들)을 배려한다. 자신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똑같은 질문과 이야기로 사람들이 지루하고 괴로워할까봐 걱정하고, 80분이 지나면 처음 보는 아이가 되어버리는 루트에게도 항상 사랑을 베푼다. 화자인 파출부는 이런 박사의 모습이 드러났던 에피소드들을 하나하나 꺼내놓는다. 하지만, 파출부가 이런 박사의 따뜻하고 순수한 성격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파출부가 먼저 마음을 열고 박사에게 다가갔기 때문일 것이다.
박사는 80분 밖에 되지 않는 기억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항상 사람을 진심과 경의를 담아 대한다. 상대방이 아는 사람인지 조차 기억하지 못하면서.
박사와의 이별은 담담하게 이야기하지만, 파출부와 아들 루트에게는 누구보다 박사가 크게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특히 루트는 박사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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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주의>
등장인물이 많고 이야기가 한 줄기가 아니다. 그래서 더 복잡한 것 같은데, 산만하지는 않다. 사건에 대한 이야기로 처음부터 끝까지 가는 것이 아니라, 사건에 얽힌 주인공의 개인사가 또 다른 작은 사건들을 불러오고, 나중에는 그 둘이 하나로 뒤엉켜 마무리를 맺는다.
읽다보면 추리 소설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미스테리, 호러 소설같은 느낌이 있다. 살해 트릭이 최면이다보니 더 그런 것 같은데, 아무도 없는 어두운 거리에서 사람이 자살하고 막 그러다보니. 거기에 정체를 모를 사람이 결정적인 도움을 주고 알 수 없는 사람이 전화를 하고 그런 것들이 뒤엉켜서 그런 것 같다.
등장인물 가운데 주조연? 혹은 조연급 인물들에 대한 설명이 빈약하고 성격도 단순하게 묘사되다 보니 인물들이 재미가 없다. 주인공이 일하는 알바의 직원도 그냥 착한 사람이고, 주인공을 도와주는 '누님'도 그냥 주인공을 돕는 역할로 끝. 그에 대한 설명같은 것도 없다. 주인공을 괴롭히는 아이도 그냥 괴롭히는 것을 좋아하고.
하지만 악역은 다른 추리소설에서 보는 느낌과는 매우 달라서 인상깊다. 주인공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심판'이라는 부분에 있어서 주인공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실제 주인공은 그 공감대 속에서 악역을 계승할 뻔 하기도 했고. 하지만 그러지 않았고, 악역은 그것을 분해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형태로 주인공 나름대로의 마무리를 할 수 있도록 또 다른 배려를 준비했다. 악역이 아니라 주인공의 내면의 상처를 마무리하고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그런 역할인 것처럼 보일 정도.
최면이 살인의 트릭으로 작용하기도 하고, 등장인물간의 연결고리가 뭔가 조금 비현실적이라고 느껴졌다. 설명이 부족한 조연들도 그렇고. 이야기는 재미있는데, 1년 전에 쓴 <화차>에 비교하면 좀 더 '소설'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러고보면 <화차>는 적은 등장인물에 한 줄기의 이야기로 우직하게 달려가는 소설이라는 느낌이었는데. 오래전에 읽었고, 저번에 본 영화와 겹쳐지면서 그렇게 기억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화차> 발표되고 1년 뒤에 발표된 작품이 <마술은 속삭인다>라는 점에서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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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urious Incident of the Dog in the Night-Time
- 저자
- Haddon, Mark 지음
- 출판사
- Vintage Books USA | 2004-04-01 출간
- 카테고리
- 문학/만화
- 책소개
- Christopher John Francis Boone know...
<스포일러 주의>
처음으로 끝까지 읽은 영문 소설이다. 나에게 박수를, 짝짝짝.
자폐를 가진 15세의 주인공은, 어느날 옆집의 개가 죽어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개를 죽인 범인을 찾아내기 위해 혼자 수사를 시작한다. 그리고 그 과정들을 책으로 기록한다.
추리물일 것 같고 책을 쓴 주인공 역시(물론 주인공이 실존인물이 아니기 때문에 주인공이 이 책을 썼다는 것 역시 소설일 뿐이다) 셜록홈즈를 좋아하고 추리물을 좋아한다고 하지만, 이 책은 추리소설은 아니다. 개를 죽인 범인을 찾아나서기 시작하면서 주변과의 갈등을 겪고, 낮선 사람을 두려워하는 자폐아인 주인공이 한적한 마을에서 혼자 런던까지 가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나름대로 약간은 성장을 하는, 그런 이야기다.
전반부다 재미있었지만, 중반에서 개를 죽인 범인이 밝혀지고 엄마가 죽지 않았고 다른 남자와 살게 되어 런던으로 이사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장면부터 더 빠져들었다. 아빠가 주인공을 속이고 엄마를 죽었다고 말했던 것에 대해 사과하고 설명하는 장면은 가슴이 많이 짠했다. 자폐증인 주인공의 시점으로 쓰여졌지만 주변 가족들의 고통에도 많은 관심이 갔다. 아이는 부모임에도 자신을 건드리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고, 15년이나 함께 살았지만 부모는 자폐를 가진 아이를 아직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그로 인해 부부도 따로살게 되고.
책은 개를 죽인 범인을 찾는 것에 관한 이야기와 그밖의 과거에 있었던 일들이나 자신의 생각, 지식, (선생님이 소설책에 필요하다고 한) 풍경의 묘사 등이 챕터마다 번갈아가면서 쓰여진다. 자폐증 아이의 시각으로 서술된 이야기라 일반적인 소설과는 다른 느낌이다. 사람의 감정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낮선 사람을 경계하고 자신을 건드리는 것을 특히 두려워하는 것들, 사람이 많은 곳을 두려워하여 귀를 막고 웅크린 채 외부를 차단하려고 하는 모습들이 자폐아의 시점에서 쓰여지니 신기하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이런 행동을 취하는구나, 싶다. 그리고 감정적인 능력이 거의 결여된 대신 논리적인 사고가 매우 발달되어있어서 그런지 책의 내용도 이해하기 어렵지 않고 단어가 약한 나도 읽을 수 있었다. 어려운 단어나 의미가 모호한 경우는 주인공이 알아서 이런이런 의미라고 다 설명해준다. 전체적으로 책 자체가 15세 소년이 썼다는 설정이라 문장도 어렵지 않고 단어 수준 역시 많이 어렵지 않았다.
국내에는 <한밤 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어 있다. 표지는 원서가 훨씬, 훨씬 더 이쁘다. 사실 다른 책과 비교해도 이 책의 원서 표지는 정말 이쁜 편인 것 같긴 한데, 우리나라 번역본 표지는 다른 책과 비교해도 별로다.
우리나라 번역본은 청소년이나 어린이 대상으로 번역된 것 같은데, 어른이 읽어도 유치하다고 느끼지 않을 내용이다. 사실 원서를 읽으려고 할 때, 정신적인 나이에 비해 영어 나이는 많이 어리기 때문에 정신적인 나이에 맞춰 보자니 영어가 너무 어렵고, 또 영어 나이에 맞춰 보자니 너무 유치한 책을 고르기 쉽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영어도 많이 어렵지 않고 내용도 어른이 읽기에도 재미있어 좋은 것 같다. 몇주 전에 서울역에서 책을 싸게 팔길래 구경갔다가 유명한 책이라 그냥 구매했던 건데, 정말 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원서를 한 권 끝까지 읽었다는 것이 뿌듯하고 용기도 생긴다. 영어 실력도 좋지 않으면서 괜히 욕심부려 원서를 많이 사놨는데, 이 책을 시작으로 조금씩 읽어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스포일러 주의>
<용의자 X의 헌신>에 이은 '갈릴레오 시리즈' 4탄. <용의자 X의 헌신>을 너무 예전에 읽어서(고등학교때였으니 거의 6, 7년쯤 됐나) <성녀의 구제>읽기 전에 먼저 읽을까 했는데, 그래도 안 읽어본 책이 더 궁금해서 <성녀의 구제>를 먼저 펴들었다.
<용의자 X의 헌신>과 마찬가지로, 다 읽고 나면 제목에서 강한 인상을 받게 된다. <용의자 X의 헌신>이 말 그대로 '용의자 X의 헌신'에 관한 내용이고 그 '헌신'이 트릭의 핵심인데, <성녀의 구제> 역시 '성녀(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만)의 구제'에 관한 내용이고 '구제'가 트릭의 핵심이다.
여자가 결혼하면서 남편을 죽일 살인 계획을 마련해놓고, 그 살인계획에 남편이 걸려들지 않게 하기 위한 1년간의 결혼생활을 보내는 그 심정이 사실 이해가 잘 되진 않는다. 본인 때문에 친구가 자살했다는 죄책감, 자신도 임신하지 못하기 때문에 버려지고 말 것이라는 슬픈 확신,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선택하는 그 마음을 다는 이해하지 못하겠다.
갈릴레오 탐정은 (전작들에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추리하는 과정에서 이리저리 부딛히고 실패하지만, 결국은 가장 가능성이 적은 하나의 해답을 발견한다. '허수해'라고 말하는데, 그렇게 지칭하는 것은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그리고 갈릴레오는 물리학자인데, 추리하는 과정과 물리학이 크게 관련이 있는 건가 싶기도 했다. 뭐 이건 캐릭터 설정에 관한 사소한 의문이지 <성녀의 구제>에 관한 불만은 아니다.
<용의자 X의 헌신>도 재미있었고, <성녀의 구제> 역시 재미있었으니 '갈릴레오 시리즈'는 다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생긴다.
<스포일러 주의>
읽은지 좀 되서 감상은 짧게.
원제는 <레이크 사이드>인데 우리나라 번역판은 <호숫가 살인사건>으로 번역되어 나왔다.
우리나라 부모들의 자식 교육열도 대단하지만 이 책에서 나오는 부모들의 교육열 역시 대단하다. '교육열'이란 단어를 뛰어넘는, 말하자면 '교육 광기'랄까. 비뚤어진 자식사랑 때문에 결국은 가족이 하나 되는 마지막 모습이 참 아이러니했다.
목적지를 향해 한눈팔지 않고 달려간다는 느낌의 소설이었다. 등장인물의 행동이나 스토리가 그렇다는게 아니고, 독자 입장에서 딴 생각 안 하고 내리 읽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