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에 해당되는 글 9건
- 2013.02.27 명탐정의 규칙(히가시노 게이고)
- 2013.02.04 탐정 갈릴레오(히가시노 게이고)
- 2013.01.22 잠자는 숲(히가시노 게이고)
- 2013.01.21 붉은 손가락(히가시노 게이고)
- 2012.10.17 성녀의 구제
- 2012.10.17 호숫가 살인사건
- 2012.10.14 마구
- 2012.09.30 다잉 아이
- 2012.08.10 히가시노 게이고 모음
<스포일러 주의>
히가시노 게이고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굉장히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은 소설. '명탐정 덴카이치 시리즈'라는 가상의 추리소설 시리즈가 있다. 그 시리즈의 각 권에서의 에피소드를 단편화하여 실어놓은 책이 바로 <명탐정의 규칙>이다. 이 단편들에서는 '명탐정 덴카이치 시리즈' 각 권에서 쓰인 이야기와 트릭들의 부조리함을 털어놓는데, 특이한게 시리즈의 주인공인 덴카이치 탐정과 오가와라 경감은 이 이야기가 소설임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고 소설 내에서 움직이다가도 소설 밖의 세계로 나와 트릭의 어이없음과 작가의 필력없음을 한탄하곤 한다(두 주인공 외의 등장인물들도 이 이야기가 소설이라는 것을 종종 인식한다). 때문에 단편들의 핵심은 이야기와 트릭에 있는 것이 아니라 두 주인공의 장르 비틀기이다.
여기서 히가시노 게이고는 독자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추리소설, 즉 본격 추리소설이라는 장르에서 종종 고민 없이 차용되어 쓰이는 관습적인 트릭이나 설정들에 대해 풍자적인 비판을 한다. 첫 단편인 '밀실 선언-트릭의 제왕'에서는 본인의 데뷔작인 <방과 후>에서도 밀실 트릭이 쓰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끝나버린 지루한 트릭이라고 강도높게 비판한다. 그리고 그밖에 다잉메세지나 알리바이 트릭, 살해 방법이나 살해 도구에 관한 트릭들을 각 단편에서 하나하나 짚으며 비판하는데. 작가 본인은 작품의 경향이 처음에는 트릭의 성립에 무게를 두다가 점점 범행의 배경과 범인의 동기에 무게를 두는 쪽으로 변화해간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내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을 많이 읽어본 것도, 시간순으로 읽어본 것도 아니라 작가의 작품들을 대입해가며 읽기는 힘든데, 내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 중 가장 먼저 접했던 <용의자 X의 헌신>은 읽은지 오래 되어서 범행 트릭에 대해서는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범행의 동기가 사랑과 헌신이었던 것은 인상깊게 남아있다. 같은 갈릴레오 시리즈인 <성녀의 구제>역시 그렇고. 하지만 갈릴레오 시리즈의 첫 작품인 <탐정 갈릴레오>는 다른 것보다도 트릭에 집중한 단편 다섯 편을 모아두었다. 이렇게 보면 갈릴레오 시리즈도 비슷한 흐름 속에 있는 걸까.
<명탐정의 규칙>의 해설에 보면 가가형사 시리즈 가운데 한 권인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의 경우 (나처럼)직접 추리하며 읽지 않는 독자들의 경우에는 답을 알 수가 없도록 모든 단서는 소설에 있지만 마지막에 범인을 밝히지 않는다는데, 진정한 독자와의 추리대결이라는 느낌이 들어 궁금해진다.
방금 썼듯이, 나는 직접 추리하고 메모해가면서 읽는 스타일이 아니라 그냥 쭈욱 읽어내려가면서 탐정이나 형사의 추리를 보고 나중에 아하, 그랬구나 하고 이해하는 식이다. 하지만 직접 추리해가면서 읽는 독자들의 경우엔 이 책을 더 재미있게 ,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거기에 히가시노 게이고의 팬이라면 일본에서의 출판년도에 따라 <명탐정의 규칙>전후의 작품들을 비교해가며 대입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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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주의>
갈릴레오 시리즈 첫 번째 작품인 <탐정 갈릴레오>. 연결되지 않는 다섯 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형사 구사나기와 물리학 교수 유가와 콤비 이야기를 맛보기로 읽기에 딱 좋은 것 같다. 다섯 편의 단편은 모두 길거나 복잡하지 않으면서도 유가와의 논리적인 사고력과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 역할을 재미있게 담고 있다. 유가와는 탐정 역할로 트릭을 밝혀내기도 하지만 사건 현장에서 나타난 결정적인 현상의 원인이라던지 증언의 사실 여부도 밝혀낸다.
읽어본 갈릴레오 시리즈인 <용의자 X의 헌신>과 <성녀의 구제>와는 다르게 단편 모음이라 이야기의 스케일이라고 해야하나, 깊이라고 해야하나 그런게 얕긴 하다. 하지만 처음 갈릴레오 시리즈의 매력을 접해보기에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유가와 교수가 왜 갈릴레오라고 불리는지 궁금했는데, 그냥 어물쩡 구사나기의 동료들이 갈릴레오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 뿐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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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주의>
어제 읽은 <붉은 손가락>에 이어 가가 형사 시리즈. 시간 순서로는 시리즈중 두 번째 권에 해당한다고 한다. 참고로 <붉은 손가락>은 일곱 번째.
이번 소설의 무대는 발레극단이다. 처음 발생한 살인사건은 정당방위일 것으로 여겨졌지만 이후 독극물 주사에 의한 살인과 음독 살인미수 사건까지 벌어지면서 사건이 점차 확대된다.
사건에 관한 이야기보다는 가가 형사의 사랑 이야기가 더 흥미로웠다. <붉은 손가락>에서는 고참 형사로 나와서 빈틈 없는 모습을 보였다면 여기서는 풋풋한 형사로 등장하며 발레단 사람과 사랑하는 사이로까지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답게 주인공의 로맨스가 있음에도 분위기는 건조하다.
<붉은 손가락>에도 나왔던 가가 형사 아버지도 잠깐 등장하고, 이전 권에 나왔을 가가 형사의 첫사랑?이야기도 잠깐 나오고. 부분부분 재미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평이했다는 느낌.
+예전에 읽고 판 <악의>가 <잠자는 숲>의 바로 다음권이었다. 기억에는 <악의>에서는 가가형사 개인 이야기보다는 범인에 의한 서술트릭에 더 무게가 실린 소설이었던 것 같다.
+띠지에 '가가 형사, 지금 그의 매력이 폭발한다!'라는 문구가 있는데, 왠지 오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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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주의>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은 오랜만이다. 가가 형사 시리즈중 한 권인 <붉은 손가락>을 읽었다. 갈릴레오 탐정 시리즈보다는 가가 형사 시리즈를 더 좋아하는데, 역시 갈릴레오 탐정은 가가 형사보다는 맘에 들지 않는 캐릭터이기 때문인 것 같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처음 접한 것이 갈릴레오 탐정 시리즈인 <용의자 X의 헌신>인데도.
<붉은 손가락>은 가족에 관한 이야기다. 치매에 걸린 부모를 모시는 것은, 부모임에도 불구하고 자식들에게는 부담이 되는 일이다. 까놓고 맗 불편하고 귀찮기도 하고. 거기에 외아들, 부인, 남편 사이의 소통 불화로 인한 깊은 골까지 더해져 슬픈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300페이지도 안 되는 이야기라 쭉쭉 읽힌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온다 리쿠에 비해서 뭔가 건조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히가시노 게이고는 온다 리쿠에 비해 공간에 대한 묘사가 적다는 느낌을 받았다. 온다 리쿠는 공간에 대한 묘사가 풍부함을 넘어서 이야기의 무대가 또 하나의 주인공처럼 느껴질 때도 많다. 반면 히가시노 게이고는 공간보다는 이야기의 진행에 무게를 둔다. 그래서 군더더기 없이 이야기가 진행된다는 느낌인데, 대신 감상적인 무언가는 온다 리쿠에 비해 약한 것 같다.
대신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이 갖는 장점이 있는데, 바로 반전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반저느로 독자들의 뒤통수를 칠 뿐만 아니라 반전을 통해 감정적인 한 방을 남겨준다. <붉은 손가락>에서는 비뚤어진 자식의 가정에서 방치되다시피 모셔지는 치매걸린 어머니가 안타까운 반전을 만들어낸다. 사랑하는 아들의 집에서 짐짝 취급을 받는 생활, 손주는 비뚤어지고 아들내외 사이의 대화는 점점 사라져가는 그런 집에서 늙은 어머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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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주의>
<용의자 X의 헌신>에 이은 '갈릴레오 시리즈' 4탄. <용의자 X의 헌신>을 너무 예전에 읽어서(고등학교때였으니 거의 6, 7년쯤 됐나) <성녀의 구제>읽기 전에 먼저 읽을까 했는데, 그래도 안 읽어본 책이 더 궁금해서 <성녀의 구제>를 먼저 펴들었다.
<용의자 X의 헌신>과 마찬가지로, 다 읽고 나면 제목에서 강한 인상을 받게 된다. <용의자 X의 헌신>이 말 그대로 '용의자 X의 헌신'에 관한 내용이고 그 '헌신'이 트릭의 핵심인데, <성녀의 구제> 역시 '성녀(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만)의 구제'에 관한 내용이고 '구제'가 트릭의 핵심이다.
여자가 결혼하면서 남편을 죽일 살인 계획을 마련해놓고, 그 살인계획에 남편이 걸려들지 않게 하기 위한 1년간의 결혼생활을 보내는 그 심정이 사실 이해가 잘 되진 않는다. 본인 때문에 친구가 자살했다는 죄책감, 자신도 임신하지 못하기 때문에 버려지고 말 것이라는 슬픈 확신,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선택하는 그 마음을 다는 이해하지 못하겠다.
갈릴레오 탐정은 (전작들에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추리하는 과정에서 이리저리 부딛히고 실패하지만, 결국은 가장 가능성이 적은 하나의 해답을 발견한다. '허수해'라고 말하는데, 그렇게 지칭하는 것은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그리고 갈릴레오는 물리학자인데, 추리하는 과정과 물리학이 크게 관련이 있는 건가 싶기도 했다. 뭐 이건 캐릭터 설정에 관한 사소한 의문이지 <성녀의 구제>에 관한 불만은 아니다.
<용의자 X의 헌신>도 재미있었고, <성녀의 구제> 역시 재미있었으니 '갈릴레오 시리즈'는 다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생긴다.
<스포일러 주의>
읽은지 좀 되서 감상은 짧게.
원제는 <레이크 사이드>인데 우리나라 번역판은 <호숫가 살인사건>으로 번역되어 나왔다.
우리나라 부모들의 자식 교육열도 대단하지만 이 책에서 나오는 부모들의 교육열 역시 대단하다. '교육열'이란 단어를 뛰어넘는, 말하자면 '교육 광기'랄까. 비뚤어진 자식사랑 때문에 결국은 가족이 하나 되는 마지막 모습이 참 아이러니했다.
목적지를 향해 한눈팔지 않고 달려간다는 느낌의 소설이었다. 등장인물의 행동이나 스토리가 그렇다는게 아니고, 독자 입장에서 딴 생각 안 하고 내리 읽게 된다.
<스포일러 주의>
히가시노 게이고의 <마구>를 읽었다. 작품 발표 순으로 하면 초기작에 해당되지만(88년 작), 국내에 소개된 것은 작년인 2011년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이 발표 순이 아니라 한 작품이 인기를 끌고 나서 과거의 작품들이 무작위로 발표되는지라 이렇게 초기의 작품이 근래에 번역되어 나오기도 하는 것 같다.
약소했지만 천재 투수의 입학을 계기로 좋은 성적을 올리게 된 한 고등학교의 야구부에서 포수가 시체로 발견된다. 그와중에 한 전기회사에서 장난이라기엔 너무나도 정교한 폭발물이 발견되고, 고등학교 야구부의 천재 투수 역시 시체로 발견된다. 두 사건은 아무런 연관이 없어보이지만 사건이 진행될 수록 연관성이 드러나게 된다.
야구부의 살인사건이 메인 스토리이고, 전기회사의 폭발물은 서브 스토리라고 할 수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마구>의 중심은 주인공이자 살해된 천재 투수인 '스다 다케시'이다. 야구부 살인사건의 트릭이나 전기회사에 폭발물을 설치한 범인은 사실은 전부 사이드라고 생각한다. 실제 살인을 일으키게 된 직접적인 계기나 트릭도 그다지 공감되지 않고, 전기회사의 폭발물 이야기는 없애는 편이 더 깔끔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주인공인 '스다 다케시'의 캐릭터가 갖는 매력이 있다. 출생의 비밀과 함께 자신이 집안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중압감, 그를 위해 진로를 정하고 그 외의 모든 것들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안쓰러웠다. 천재적인 재능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욱더 확실한 미래를 위해 살인적인 연습을 소화해내야 하는 모습, 자신의 존재 이유인 오른팔이 망가졌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절망감, 스카우터가 변화구를 익히느라 자세를 망가트리지 말라고 조언했음에도 불구하고 망가진 오른팔로도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 마구를 배워야만 하는 상황들. 고등학생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강인한 멘탈을 갖고 있었던 것은 그만큼 많은 상처와 각오를 지나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배운 '마구'는 말 그대로 악마의 공이었다. 망가져가는 오른팔의 마지막 존재 의미가 될 수 있었던 공.
히가시노 게이고는 항상 살인사건과 그 트릭보다는 범인의 배경에 관심을 갖는 것 같은데, 그런 점에서 '스다 다케시'라는 캐릭터는 꽤나 인상깊었다.
포수를 살해하고, 그 여파가 가족들에게 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스다 다케시가 주변을 정리하고 자살로 마무리하는 점은 기시 유스케의 <푸른 불꽃>을 연상하게 했다. 하지만 자살로 마무리하기로 결심하고 실행하는 일련의 과정들은 <푸른 불꽃>이 훨씬 더 설득력이 있다.
꽤 두껍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답게 빨리 읽힌다. 페이지당 글자 수가 적은 것도 있겠지만.
+ 여담이지만, 페이지당 글자수를 적게 만들고 줄 간격을 늘리는 것은 책장이 빨리 넘어가게 만들어서 몰입도를 높이기 위한 의도적인 편집인걸까, 아니면 그냥 책을 두껍게 만들어서 비싸게 팔려는 것일까. 확실히 책장이 빨리 넘어가면 좀 더 집중이 되는 것도 같다. 한 페이지를 오랫동안 보고 있으면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것 같기도 하다. '아, 아직도 이 페이지인가' 싶달까. 하지만 추리, 스릴러 같은 경우에는 몰입이 잘 되니까 그냥 페이지에 글자 수 많이 넣고 책 두께를 좀 줄이고 싸게 만들어도 괜찮을 것 같기도 한데.
++ 작년에 <마구>가 나왔을 때, 어디선가 승부조작에 관한 이야기라고 들었던 것 같아서 그쪽 스토리를 예상하고 있었는데 내 착각이었다. 완벽한 착각이었다.
<스포일러 주의>
읽으면서 트릭을 어떻게 설명할건지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했는데, 비과학적이라는 느낌이라 맥이 풀렸다. 주인공은 자신이 낸 교통사고로 죽은 피해자가 살아돌아와 자신에게 복수를 하려고 한다(세세하게 쓰자면 주인공은 자신이 낸 교통사고의 기억을 잃어 자신에게 접근하는 사람이 죽은 피해자인줄 몰랐고, 또 사실은 주인공인 낸 사고가 아니라 대신 덮어쓴 것 뿐이긴 하지만). 분명히 피해자는 죽었는데 다시 살아와 복수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지 궁금했다. 피해자의 남편이 마네킹 기술자라 인조인간같은 형태로 만들어서 복수하는건가, 싶었는데 일단 피해자의 남편은 사망했고, 설마 인조인간같은 어이없는 SF식 설정으로 대충 때우려는건 아니겟지 싶었다. 쌍둥이 자매가 있는 것도 아닌데 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답은 최면이었다. 그것도 뭐 피해자의 남편이 애먼 여자 구해다 최면을 걸어 대신 복수시키고 그런게 아니다. 교통사고의 가해 차량은 두 대 였는데, 그중 주인공이 아닌 다른 차량의 운전자가 죽어가는 피해자의 눈을 보면서 본인이 바로 피해자라고 혼자 최면에 걸린 것이다. 그 뒤로 체형도 피해자와 비슷하게 바꾸고 얼굴도 피해자와 똑같이 성형해서 가해자에게 복수한다는 설명이었다.
그래서 제목이 '다잉 아이'구나, 싶으면서도 이해는 안 됐다. 죽어가는 눈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했던 것 같은데 이건 조금 지나친 것 같다. 이야기도 재미있고 곳곳의 반전들로 인해 더욱 빠져들었지만 마지막에 비밀을 알고 나서는 음...회의적인 관점이 되었달까.
이제, 내용 외적인 이야기로. 글자가 헐렁하게 배치되어있다. 줄간격도 길고. 장르의 특성상 빨리 넘기게 되는데 한 장에 들어있는 글자 수가 적다보니 더욱 더 책장이 잘 넘어간다. 두껍지만 금방 읽었다. 그리고 밤에 읽어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마지막 장을 넘기면 깜짝 놀라게 된다. 재미있는 장치였다.
<스포일러 주의>
온다 리쿠 모음 글을 쓰고 보니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도 많이 읽은 것이 생각났다. 짤막짤막하게 인상 위주로 정리해둔다.
방과 후를 제외하고는 전부 이번에 중고로 구매하게 되어 처음 읽어본 작품들. 기왕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을 많이 사게 되었으니 집에 있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다른 작품들도 다시 한 번 읽어보자 싶어서 방과 후는 한 번 더 읽게 되었다. 용의자 X의 헌신은 잃어버렸는데 나중에 샀고 백야행은 친구에게 빌려주었다가 얼마 전 반납받아 다시 읽어보지는 못했다. 성녀의 구제는 얼마 전 알라딘 오프라인 중고서점에서 건졌다. 이것 역시 아직 읽지 못했다.
1. 악의 범죄자의 수기와 형사의 수사일지를 번갈아 제시하면서 진행하는 방식은 좋았다. 하지만 ‘악의’라는 제목에 어울리는 악의는 아니었다. 책 뒷면 광고 문구에서 '악의'라는 것에 너무 기대했던 것 같다.
2. 변신 뇌수술로 인해 인격이 바뀌는 과정과 변해가는 자신을 바라보는 주인공의 긴박함이 잘 느껴져서 좋았다. 반전을 포함해 큰 줄거리를 알고 봤음에도 불구하고 재미있게 읽었다.
3. 숙명 마지막에 두 주인공에 얽힌 숙명을 밝히는 부분이 살짝 김빠진다는 느낌. 사실 개인적으로는 살인사건에 집중하다 보니 오히려 두 주인공 사이의 숙명이라는 것이 뭔지 하는 궁금증은 조금 수그러든 면도 있었다.
4. 새벽 거리에서 불륜이라는 것은 한 순간의 열기가 아니라 독하게 마음먹고 저질러야 하는 것이구나, 하는걸 느꼈다. 왠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에서 살인사건이 안 얽히면 뭔가 어색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살인사건보다는 불륜을 저지르는 남성의 약해빠진 마음과 외줄타기에 훨씬 더 집중하게 되었다. 불륜을 하고 싶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륜이라는 것은 희망 따윈 없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5. 방과 후 데뷔작. 그래서 그런지 느낌이 다르다. 이후의 책들은 범인을 찾는 것보다는 범죄의 원인을 찾는데 집중하게 되는데, 이 책은 트릭에 집중하고 범인을 찾는 것이 1차적인 목표. 하지만 이 책에서 범죄의 동기도 재미있었다. 납득이 갈 것도 같다.
우리나라에 번역된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을 다 읽어본 것은 아니지만(이라기보단 사실 진짜 일부만 읽어본 것이지만) 내가 읽어본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들은 그 책들 사이에서 우열이 있을지 몰라도 전체적으로 일정수준 이상의 재미는 보장한다. 전체적으로 상황 하나하나가 버릴 부분 없이 짜임새 있게 구성되어있으면서 또 그 상황들이 어디에 연결되는지 쉽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재미있다. 낭비되는 부분이 거의 없다. 그리고 범죄의 동기에 집중하면서 등장인물의 심리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소개하는 글에는 다양한 소재를 사용한다고 하는데 대체로 이과계 소재가 많다는 느낌. 그리고 추리소설이라기보다는 그냥 살인사건이 약간 얽힌 소설이라는 느낌인 작품도 있고.
이렇게 다작하면서 일정수준 이상의 재미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하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이름만 보고 고른 책들인데(중고라 값도 싸고 해서 부담없이) 각 책들 사이에서 우열은 있지만 전체적으로 다 만족스러웠기 때문에 앞으로도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은 이름만 보고도 고를 수 있는 확신이 생겼다. 이게 바로 작가의 능력이고 이름값이라는 것이겠지.